영화 <Fragments>는 “큐레이터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추구한다.
영화의 시작은 화자가 일인칭으로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조선 시대 의궤 열람을 요청하며 시작한다. 그 요청은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도서관 직원은 그에게 의궤의 디지털 본을 보기를 권유한다. 세 시간을 기다려서 마침내 열람 허가가 난 후에 화자는 의궤를 직접 손으로 만지게 된다. 생각보다 훨씬 크고, 아름답고, 생생했다. 의궤 속엔 1809년 기사년의 축제가 고스라니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축제는 사도세자와 그와 동갑인 혜경궁 홍씨와 성혼 60주년을 기념한다 했다. 하지만 축하연 속에 왕과 왕비의 모습은 없었다. 사도 세자는 1762년 영조의 명에 의해 뒤주에 갇힌 지 9일 만에 2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기에 역사는 이를 임오화변이라 부른다. 주인공은 의궤에 이상하리만큼 심취하고, 혜경궁 홍씨의 회고록에 집착한다. 조선이 휘청거리기 바로 전인 영정조 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로 불리면서 노론과 소론의 피바람이 불던 때이다. ′고대’의 이야기이지만 이를 현재의 한국의 상태와 대칭되는 듯 했다. 거대한 민족국가들 사이의 위태로움과 좌우의 대치 말이다.
그와 동시에 동시대 한국 안에서도 같은 과거이지만 전혀 다른 기억의 간극이 있음을 주목했다. 그 시작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이 90년대로 나의 눈을 돌렸다. 끊어진 다리 처럼, 파열이 보였던 그때를 말이다. 주인공은 90년대의 기억들을 수집한다. 현대미술작가, 미술관의 큐레이터, 다양한 분야의 학자, 역사가, 소설가 등 50인을 통한 심층 인터뷰로 그들의 지극히 개인적 기억들을 모은다.
위의 두가지 실타래는 화자의 큐레이터로서의 경험과 시각, 리서치와 합쳐진다. 마치 하나의 전시처럼, 이 세 가지의 상관 없는 듣한 이미지의 실타래는 병치되어 관객에게 능동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하면, 그 평행이론에 대한 실마리가 풀린다 – 마치 화자인 내가 4년에 걸쳐 고민을 했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