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2년, 프랑스 파리의 나폴레옹 3세의 궁전 옆 튜릴러리 공원. 파리의 패셔너블하고 지적인 인사들이 다 모였다. 무리 중엔 훤칠한 키에 잘 차려입은 화가 에드워드 마네와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부인 마담 마네도 있었다. 이들은 튜릴러리 가든에서 매주 2번씩 열리는 실외음악회에 온 이들이었다. 이 음악회는 장내에 내로라는 멋쟁이들이 다 모이는 장소였다.
튜릴러리 정원의 음악회 전경을 보여주는 마네의 작품 ‘튜릴러리 가든의 음악 (Music in Tuillerie Garden)’은 폭이 1미터가 조금 넘는 작은 유화작품이다. ‘인상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드워드 마네의 대표작품이지만 사실 워낙 작은 그림이라 마네의 다른 대표작 ‘올림피아’ 혹은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등에 가려져 한국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이 마네의 숨은 대표작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최근 런던 왕립미술원에서 열린 특별기획전 “마네:포트레잉 라이프(Portraying Life)”였다. 이번 전시에서 기획자는 방 하나 전체를 오직 이 작품 하나에 할애하였다. 다른 작품들은 한 공간에 여러 개씩 걸렸지만 이 작품만은 한 방 하나를 차지하는 특별 대우를 받은 것이다.
원래 이 그림은 내셔널 갤러리 소장품으로 늘 공짜로 관람할 수 있던 그림이다. 그런데 이 특별전에서는 수많은 유료 관람객들에게 둘러쌓여 그림 앞에 다가서기도 어려워졌다.
전시에서 선보인 60여점의 작품 중에 ‘튜릴러리 가든의 음악’이 특별히 집중 조명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비평가 보들레르의 철학과, 그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 당대의 삶 자체를 그렸던 마네, 그리고 문화전반 분야를 아우르며 엄청난 영향을 행사했던 예술적 조력 관계를 한 눈에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로 조명되는 것은 이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와 지적 교류 중심에 마네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네는 음악이 부재된 ‘튜릴러리 가든의 음악’ 속 ‘상징적 지휘자’인 셈이다.
음악이 부재되었다니? 제목이 말하듯 그림의 주인공은 음악회지만 오케스트라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오케스트라가 서 있을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은 바로 전시를 보러 온 관객들이다.
‘상징적 지휘자’이자 ‘관객’이었던 그 자신을 대변하는 듯 마네는 자신의 그림에 자신의 몸을 반만 포함시켰다. 그림의 가장 왼편에 서있어 화면에 반만 등장하는 그는, 군중 속에 자신을 반만 개입시킴으로써 관찰자로서의 예술가적 지위를 유지시켰다. 즉 마네는 이 정원을 거닐러 온 ‘산보객 (flâneur)’이었다.
친구였던 시인 보들레르가 이야기했듯이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거리 산보는 하나의 19세기 파리에서 개념화된 사회적 유형이었다. 파리가 현대적 도시로 발전하면서 도회적 산책이 고상한 취미가 되었다. 이 근대적 공간 안에서 우아하게 군중을 관찰하며 산책을 하던 산보객은 파리가 낳은 문화적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마네가 그린 이 그림은 마네 작가의 자화상이 포함된 ‘그룹 초상화’이자 일상을 그린 ‘장르화’이다.
그렇다면 마네는 왜 이 그림을 ‘튜릴러리 가든의 음악’이라고 명명했을까. 물론 음악회는 열리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주자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음악을 들었던 걸까.
왕립미술원에서는 때마침 전시 부대행사로 ‘마네와 오페라’라는 강연을 열었다. 전시 큐레이터 메리 엔 스티븐스와 왕립오페라극장의 일레인 페드모어는 19세기 중반의 마네와 마네를 둘러싼 음악에 대한 열띤 강연을 했다. 강연 역시 ‘튜릴러리 가든의 음악회’로 시작했다.
“마네는 화면의 가장 왼쪽에 서있어요. 그의 바로 앞에는 소설가 겸 비평가였던 샴플러리, 그 옆은 아스튀릭, 보들레르가 그림의 왼쪽에 있고, 이 베일에 얼굴이 안 보이는 여인은 마담 마네였죠. 그리고 여기 오른 쪽에 오펜바흐가 보이네요.”
샴플러리는 그림이 그려지기 2년 전 (1860) 리차드 바그너에 대한 책을 쓴 인물이다. 마네와 샴플러리 사이에는 마네와 같은 작업실을 쓰는 화가 드 발레로이가 살짝 보인다. 그 세명의 약간 옆에 콧수염이 길게난 자카리 아스튀릭이 앉아있다. 저자, 비평가, 편집장이면서 작곡가였고 스페인에 탐닉해 있었다. 마네의 스페인 여행 일정도 1865년 아쉬트뤽이 직접 짜준 것이었다. 아쉬트룩 옆에 최신식 정원 의자인 연철의자에 앉아있는 두 여인은 작곡가 오펜바흐의 부인과 레조네 부인이다. 레조네 부인이 여는 작은 가정음악회(살롱)에서 얼마 전 마네는 샬스 보들레르를 만났었다. 샬스 보들레르는 레조네 부인 뒤쪽에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두 여인과 등을 지고 앉은 부인은 마네 부인이다. 마네 부인은 그녀의 남동생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마네 동생의 어깨 너머로 작곡가 오펜바흐가 보인다.
단순한 사교 관계가 아니라 이들의 서로의 작품에 대한 이해는 실제로 강력했다. 보들레르는 바그너를 옹호했다. 파리지앵의 삶을 오페라로 만들고 개인 극장을 갖고 공연을 열던 작곡가 오펜바흐의 공연장에 바그너도 갔으리라. 이 그림에도 있는 고띠에는 그 누구보다 마네의 그림을 방어했다. 당시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했던 고띠에는 마네 그림의 현대성을 누구보다 강조했다.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들은 우리가 추측할 수 밖에 없지만 아마 서로에게 있어 공통분모로 작용하는 영감의 원천들이 있었으리라. ‘튜릴러리 정원의 음악’은 낭만주의 사조 아래에서 고독하게 개별적으로 존재했던 예술적 천재들이 인상주의 초기로 넘어가면서 서로 영감의 원천을 공유하며 예술성을 함께 지피기 시작했음을 증명해주는 그림인 것이다.
김승민 큐레이터 글
(by Stephanie Seungmi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