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세트 테이프에서 익숙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면, 흰 장갑을 왼쪽 손에 끼고 두 발로 미끄러지듯 뒤로 걷는 ‘문워크’를 해보지 않은 ‘청춘’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아버지의 중절모를 옆으로 획 던져버리고 짝다리를 건들거리며 골반을 들썩이던 현란한 춤사위도, 하지만 이젠 ‘젊은 날의 초상’이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1958~2009). 그의 탄생 60주년을 맞아 런던 내셔널포트레이트갤러리가 그를 추모하는 대규모 전시를 시작했다. ‘마이클 잭슨: 온 더 월(Michael Jackson: On the Wall·6월 28일~10월 21일)’이다. 그의 1979년 앨범 ‘오프 더 월(Off the Wall)’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과 키스 해링, 사진작가 데이비드 라샤펠 등 시대를 풍미한 작가 48명이 구현한 그의 다양한 모습이 ‘벽 위에서’ 살아 숨 쉰다. 이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11월 23일~2019년 2월 14일), 독일 본 분데스쿤스트할레(2019년 3월 22일~7월 14일), 핀란드 이스푸 현대미술관(2019년 8월 21일~2020년 1월 26일)으로 이어지는 초대형 월드투어전이다. 살아있었다면 오는 29일은 그의 환갑잔칫날. 중앙SUNDAY S매거진이 예순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전시장을 다녀왔다. 팝의 황제가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You are Not Alone)’라며 ‘나는 거기에 있을 겁니다(I’ll Be There)’라고 여전히 노래하고 있는 그곳을. 런던 글 김승민 ISKAI 컨템포러리 아트 디렉터 사진 The National Portrait Gallery·외신종합 카세트에서 “철컥” 소리만 들리면 방문을 박차고 나와 춤을 춘 기억이 있다. 여덟 살 소녀의 댄스 본능을 일깨운 소리는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었다. 전시장으로 가면서 ‘The Way you Make me Feel’을 떠올렸고 가벼운 어깨 춤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흥얼거리다 ‘Beat It’ 뮤직 비디오도 찾아봤다. 이 노래 만큼, 아니 그보다 더 히트넘버인 ‘Billy Jean’을 먼저 볼까 잠시 망설였지만, 아무튼. 그를 오래 좋아했고 즐겨 들었던 만큼 노래마다 각기 다른 추억이 스며있다. 스멀스멀 떠오르는 추억들이 못내 좋았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돌려 듣듯 전시장의 여러 방을 이리저리 쏘다녔다. 전시 기획은 내셔널포트레이트갤러리 관장인 니콜라스 쿨리난(Nicholas Cullinan)이 맡았다. 관장이 직접 큐레이팅 한, 흔치 않은 이 전시의 서문은 마이클 잭슨과 오프라 윈프리의 토크쇼 대화로 시작된다. 오프라: 당신은 얼굴을 하얗게 브리치 하나요? 마이클: 그게 왜 중요하죠? 저는 미술의 열렬한 팬이에요. 미켈란젤로를 정말 좋아해요. 만약 제가 미켈란젤로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것에 영감을 받아 지금의 그가 완성됐는지 물어보고 싶을 거예요. 그가 어제 누구랑 놀았는지, 왜 햇볕에서 그렇게 오래 앉아있었는지 궁금해 하는 게 아니에요. ◐G◑The Way You Make Me Feel◐M◑ 지금까지 그가 음악·패션·안무에 끼친 영향은 수없이 읽혀졌고, 다른 뮤지션들에게 전승됐으며, 음악계에 어떤 초석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껏 그가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에 대한 전시는 없었다. 이 전시는 소장품이나 연대기를 표현한 인물 조명전이 아니다. 그 흔한 디스코그라피 관련 정보도 없다. 국적과 연령이 다른 48명의 작가들이 표현한, ‘벽에 걸린’ 마이클 잭슨들만 있다. 수많은 이들의 롤모델이자 뮤즈인 마이클 잭슨의 예술 세계를 표현한 작품임과 동시에 그림의 주제이자 주체로서 어떻게 표현되었을지를 조명하는 현대미술 전시인 것이다. 전시는 다라 번바움(Dara Birnbaum)의 작품 ‘The Way You Make Me Feel’(2018)로 시작된다. 4개의 사진은 실루엣만 있을 뿐인데, 그 형태만으로도 전 세계 누구나 그것이 마이클 잭슨임을 알아본다. 작은 움직임과 바디랭귀지만으로도 안다. 설령 그의 이미지가 각자의 마음속에는 다르게 자리 잡았다 해도. 수잔 스미스-피넬로 (Susan Smith-Pinelo)의 작품은 브라운관 안에 가득 채운 여성의 가슴이 드럼 비트에 맞춰서 출렁거리듯 진동한다. 전 세계를 춤추게 했던 그의 능력을 유쾌하게 표현한 것이다. 헬륨가스가 가득 담긴 풍선에 매달려 발꿈치를 들고 있는 듯한 신발이 명쾌하게 함축하듯, 당시 그에게 영감을 받았던 작품부터 비보를 들었던 충격을 표현한 작품, 그리고 전혀 다른 의도로, 예를 들면 팝 스타의 이미지가 다시 비싼 제프 쿤스의 미술 작업으로 탄생한 것을 비꼬는 작품까지, 50여 개의 작품을 모은 전시는 한마디로 ‘너는 나를 이렇게 느끼게 했다’. ◐G◑Dangerous◐M◑ 사춘기 시절, 보물처럼 간직하던 앨범이 있었다. ‘Dangerous’. 그 앨범의 커버를 장식했던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원본 그림의 자태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이제는 그림 앞에 서면 작가의 의도 같은 것을 분석하기에 바쁜데, 어릴 적 저 그림을 보면서는 어떤 생각을 했던지,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시 생각에 빠진다. 마크 라이단(Mark Ryden)이 이번 전시를 위해 다시 작업했다는 그림 속 마스크 뒤 마이클 잭슨의 눈, 해골을 안고 있는 꼬마, 네버랜드의 놀이기구 위 잭슨의 어린 모습까지, 반가웠다. 내 옆에 있는 관객들도 분명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비틀스와 롤링스톤스를 배출한 영국에서도 마이클 잭슨은 대체 불가능한 뮤지션이니까. 그는 록은 백인, 소울은 흑인의 장르라고 극명하게 나뉜 벽을 허문 세계적인 스타였다. 이 전시가 한국에서 열린다면 어떤 시사점을 남길까. ‘보는’ 음악의 시초로 불리는 마이클 잭슨 모습에서 지금의 K팝 가수의 패션, 서사 깊은 뮤직 비디오, 인종과 국경의 경계 없이 따라하는 화려한 안무와 떼창의 팬덤을 떠올리지 않을까. ◐G◑Black or White◐M◑ 나는 전시의 시작으로 돌아갔다. 번바움이 표현하고자 했던 그림자의 마이클 잭슨과 함께 게리 흄(Gary Hume)의 초상, 오바마의 공식 초상화로 잘 알려진 케인디 와일리(Kehinde Wiley)의 기마 초상, 이 세 작업의 모음이 자꾸 눈에 밟혔다. 마이클 잭슨은 누구나 알지만 기실 누구도 잘 몰랐던,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인종·나이·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받았던 그가 우리 곁을 떠날 때, 아니 그 이후인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흑인도 백인도 아닌, 남자도 여자도 아닌 안드로진(Androgyne·兩性) 같던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흄의 작품은 초현실적이다. 하얀 얼굴에 퀭한 눈빛의 그림. 명백히 어떤 기준을 두고 평가할 수 없고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만든 특별한 모습. 나 또한 그의 재판 내용을 읽고, 영국 저널리스트가 만들었던 다큐 ‘Living with Michael Jackson’를 보며 나름대로 판단하고 악인화하다가 동정한 거 같아 미안하다. 극사실주의로 묘사된, 아무런 형태가 없는 유령 같은 모습도 그의 모습인 건 분명하다. 와일리의 기마 초상은 17세기에 루벤스가 그린 필립 2세의 모습을 토대로 그렸다. 명화를 기반으로 흑인 초상화를 더해 유명세를 탄 작가가 마이클 잭슨으로부터 직접 위임을 받아 진행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은 이 작품을 보지 못했다. 2010년에 완성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림 속에서 ‘팝의 황제’에게 화관을 주는 천사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갑옷도-네버랜드에서 마스크를 쓴 아이를 들고 나오던, 한편으로 이미 현실과 동떨어진 그였기에-어색하지 않았다. 정말로 어색했던 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었다. 그는 왠지 불멸의 인간 같아 보였기에. ◐G◑Stranger in Moscow◐M◑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루마니아 작가 단 미할티아누(Dan Mihaltianu)의 설치 작업이었다. 1992년, 베를린 장벽과 소련 연방이 잇달아 무너지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성취감이 온 세상을 휩쓸 때, 그는 ‘데인저러스 월드 투어’로 부카레스트를 방문했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지 2년이 채 안 된 때였다. 콘서트에서 프로모터가 나눠준 그의 마스크와 콘서트 영상은 공산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 프로파간다의 절정이 만났던 역사적인 지점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공연 영상은 동상처럼 움직이지 않는 마이클 잭슨과 흥분의 도가니에 있는 관객들의 함성이 대조되며 그 자체로 “위험했던” 월드투어가 시대적 작업임을 보여준다. ◐G◑Who is it?◐M◑ 로레인 오그레이디(Lorraine O’Grady)는 마이클 잭슨의 사진을 보들레르의 사진과 같이 병치했다. 낭만파 최후의 시인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작을 상징했던 뮤지션을 같은 맥락에 비유한 것은 적절하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일찌감치 마이클 잭슨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와 관련한 기념품을 모았다고 한다. 워홀이 ‘인터뷰’ 매거진의 표지로 그렸던 초상화는 세기의 아이콘인 뮤지션과 아티스트의 세기적 만남을 상징한다. 워홀의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상업적으로 성공한 또 다른 작가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의 사진에서는 예수로 표현된 그다. 하여 나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마이클 잭슨만큼 ‘못되고(Bad)’, ‘위험하며(Dangerous)’, ‘흑백(Black or White)’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을 여전히 떠올릴 수 없다.
김승민 큐레이터 (이스카이아트 대표) aka Stephanie Seung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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