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을 만나고 싶나요?
Alice pleasance Liddell이 엘리스를 대면하는 순간.
런던의 유서깊은 극장에 올라간 연극 <피터와 앨리스>가 오픈했다.
때는1932년 루이스 캐롤 100주년이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모티브가 되었던 Alice Liddell Hargreaves씨는 이미 중년의 여인이다. 그 전시장에 피터팬의 모티브가 되었던Peter Llwellyn Davies씨가 그녀를 만나러온다. 피터씨 역시 동화속 영원히 어린 피터팬이 아닌, 삶에 찌든 청년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리고 문학속 불멸의 캐릭터로 살아야했던 그들의 인생에 대해, 그 올가미가 자신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를 이야기한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 픽션인지 구분이 안가는 상황과 설정에서 오는 관객의 박탈감은 그들의 대화를 통해 증폭된다. 둘이 실존인물이라는 것은 확실한데 정작 이 둘은 만났을까 궁금하다. 관객은 연극을 보며 앨리스 프레산스 리델 부인과 앨리스양의 모습을 중첩해서 본다.
권지안의 Self-collaboration II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 속편으로 넘어가는 단계처럼 느껴진다. 토끼굴에 빠져 돼지 아기를 안고있는 공작부인도 만나고 삼월토끼와 모자 장수 사이에서 차를 마시고 여왕과 크리켓게임을 하였던 앨리스는 움직이는 카드들이 달려들어 꿈에서 깨고 만다. 다시 현실이지만, 속편 <거울나라의 엘리스>는 집 안의 평범한 거울 뒤 또 숨겨진 세상이 있었다. 지금부터는 권지안의 이야기다. 권지안은 거울 뒤 세상이 안식처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다른 공간에서 공존하는 여러 가지 자아를 마주쳤고 무섭게도 자신이 욕망, 절망, 순수함 모두 솔직하게 비춰지는 것을 보고 자신이 처량하기도 무섭기도 했다. 이 세상과 등을 지겠다 문을 열고 들어간 8면체의 거울세계, 그 무한대로 팽창되는 공간 속이 이번 작품의 소재이자 주제이다. 그 안에서 그는 욕망을 몸으로 표현하며 빛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순수함을 표현하며 밑그림을 그린다. 그 위에 독백과 같은 거짓과 진실이 반반 섞인 글을 쓴다. 그림도 두가지 자아의 표현도 결국 재생산되며 끊임없이 왜곡된다.
이 시작은 단순한 조카의 모습에서 출발했다.
우리 조카가 횡 하고 토라져서 방으로 들어갔는데, 자기가 원해서 도망간건데, 다시 문을 열려고 하니까 문을 못열겠는거지. 그러니까 엉엉 우는거야. 그게 마치 내 모습 같았어.
갓난아이는 처음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인지 모르다가 처음 이를 인식한 순간 자신이 완전체라는 사실을 알고 자기애가 생긴다고 한다. 신화 속 나르시스가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reflection에 사랑을 느꼈듯, 아이는 거울 속의 세상과 거울 밖의 세상을 구분짓지 않는 어린시절이 있었다. 어느새 아이는 커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책을 다시 읽으며 그 속의 부조리의 허망함에 웃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동화와 현실을 구분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음을, 자신이 갖고 있는 상반되는 모습까지 사실인지 픽션인지 모른다는 것을 생각했다.
어쩌면 현실보다 동화가 더 솔직하고, 신화를 현재와 대입해서 살고있는 우리는 어느곳으로 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1914년 3월 10일, 여성 참정권 운동가 메리 리차슨은 런던의 내셔널갤러리로 들어간다. 단순한 관람객인 줄 알았던 그녀는 품속에 숨기고 있던 작은 도끼를 꺼내 벨라스케즈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 (Rockeby Venus 혹은 Venus at her Mirror> 를 여러번 찍는다. 1647년부터 1651년사이에 완성된 스페인 거장 벨라스케즈의 작품은 이렇게 아름다운 “비너스”가 옆으로 누워서 거울을 바라보는 귀한 그림이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공격을 당하고, 메리 리차슨은 체포된다. 메리 리차슨은 “현대사에 가장 아름다운 여성 에멀린 펜크허스트 (여성참정운동가Emmeline Pankhurst)가 파괴된것에 항변의 의미로 신화속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파괴했다”라고 밝혔다. 사건의 전날 에멀린이 체포되었던 것이다.
두가지 모습으로 – 그것이 권지안의 욕망에 가득찬 블랙스완으로서의 날개짓과 흰옷을 잎고 블랙라이트에서 야광빛으로 다르게 빛나는 모습으로 작업 자체는 두가지 양면선을 띄고있다. 그 위에 그가 쓰는 문장들 자체가 oxymoron이다. 이런 말장난하는 모습이 다시 우리에게 앨리스를 연상시킨다. 왜냐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저자로 알고 있는 루이스 케롤은 사실 필명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조차 어머니의 이름을 뒤집어서 만들었던 가상의 이름이었고 이런 수수께끼를 동화에서 조차 숨겨놨다.
맑은 하늘 아래 보트 하나가
천천히 꿈같이 떠가는
어느 7월의 저녁
세 아이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동그란 눈과 쫑긋한 귀를….”(이거 국문 다 찾아놓기)
A boat, beneath a sunny sky |
Children three that nestle near, |
Long has paled that sunny sky: |
Still she haunts me, phantomwise. |
Children yet, the tale to hear, |
In a Wonderland they lie, |
Ever drifting down the stream– |
각 행의 앞 자들을 따면 ‘Alice pleasance Liddell’이라는 이름이 된다.
우리가 일전에 만났던 그녀이다.
김승민 큐레이터 글 (by Stephanie Seungmi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