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of Frieze London by Stephanie Seungmin Kim for HEREN magazine



ART
Please, Freeze Me
바람이 차가워지는 10월, 외투로 옷깃을 여미는 사람이 많아질 때쯤에야 런던은 북적이기 시작한다. 바젤 아트 페어, 오모리 쇼와 함께 세계 3대 아트 페어로 불리는 프리즈 아트 페어(Frieze Art Fair)가 열리기 때문이다. 고작 16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런던을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만든 이 페어의 저력은 뭘까. 런던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큐레이팅 컴퍼니 이사키(ISAKI)의 김승민 대표가 올해 프리즈 아트 페어의 프리뷰를 전해왔다.
writer 김승민 큐레이터 (ISKAI ART 대표) editor 이기원
언제부턴가 런던이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세계적인 미술관과 방대한 아트 마켓, 그리고 수많은 작가들. 이 삼박자가 맞게 된 내막에는 19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YBA(Young British Artists)라 불리는 영국작가들의 부상이 있었다. 가난하지만 패기 넘쳤던 이 작가들은 19세기 인상파들이 일으켰던 것과 같은 강렬한 파동을 21세기에 그대로 재현했다. 물론 거기에는 찰스 사치 같은 슈퍼 컬렉터도 있었고,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던 ‘센세이션’ 같은 전시도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모든 현상이 누적된 결과, 런던이 현대 미술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런던이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이유를 테이트 모던의 개관과 프리즈 아트 페어 개최로 본다. 첨예한 미술 담론을 제시하던 매거진 <프리즈>는 이미 1991년부터 이미 런던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리즈>의 발행인 어맨더 샤프(Amanda Sharp)와 매튜 슬로토버(Matthew Slotover)는 담론만이 아닌 실물을 원했다. 런던에 세계적인 아트페어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2003년에 120개 갤러리가 참여한 프리즈 아트페어를 탄생시켰다. 첫해부터 런던 중심에 있는 리젠트 공원의 천막(프리즈만을 위해서 만드는 임시 구조물)으로 2만 6천명의 관객몰이를 했던 프리즈 아트페어는 이제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로 인정받으며, 올해로 13회를 맞이한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은가? 이제 갓 10여 년을 넘긴 신생 아트 페어가 100년 전통의 아모리 쇼, 스위스를 중심으로 홍콩과 마이애미까지 석권한 바젤 페어와 더불어 세계 3대 미술 행사로 불리는 이유가.
그건 아마도 ‘진지함(seriousness)’ 때문일 것이다. 프리즈 아트페어에 가면 진지한 세계최고의 콜렉터들, 진지한 갤러리스트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바젤과 아모리도 크게 다를 것 없지만 프리즈에는 콜렉터와 갤러리스트 외에 평범한 관객들마저도 굉장히 진지하다. 필자는 2000년부터 영국에서 생활하며 프리즈 페어가 성장하는 과정을 봐 왔기에 의견이 좀 치우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나 큐레이터가 아닌 일반인이 현대 미술 전시를 보는 것은 런던에서는 굉장히 일상적인 일이다. 날씨가 서늘해지면 프리즈 페어를 기다리고, 주말엔 테이트 모던에 가고, 신문과 TV에서 아티스트의 작품과 인터뷰를 본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프리즈 페어가 작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갤러리의 부스 전시가 기본 형식인 것은 맞지만, 상업갤러리의 독자적인 전시장에서도 주제를 만들어 작품을 보이는 것이 기본적으로 장려된다. 따라서 참여 갤러리를 선정할 때부터 개인전 형태나 새로운 작품(가급적 최초 공개되는)에 대한 제안을 받고, 예술성과 독창성을 먼저 본다. 이로 인해 작품 판매만이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접점을 만들고 작가의 작품을 돋보이게 전시할 수 있는 기회가 총체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한 흔히 말하는 블루칩 작가들이나 오랜 전통을 가진 힘 있는 갤러리들이 전시를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메인 전시가 두 개로 나눠져 있다. 신진 갤러리는 아무래도 신인 작가들과 함께 하는 경우가 다수이기에 젊고 가능성 있는 갤러리와 작가들의 섹션은 따로 분리해서 ‘Focus’라는 이름의 섹션으로 나누고 포용한다. 신진 갤러리의 경우 이 포커스 섹션에 뽑혀 프리즈 페어에 참여하는 것이 목표다. 이 포커스 섹션에서 메인 전시로 옮겨가는 것이야말로 진정 갤러리의 명성을 떨치는 방법인 것이다.
올해 메인 섹션에는 늘 안방마님 같은 존재감을 발휘하는 화이트 큐브나 매리언 굿맨, 하우저 앤 워스 등의 메이저 갤러리 외에도 차임 앤 리드(Cheim & Read (New York)), 갤러리 카멜 메노(Galerie Kamel Mennour (Paris)), 사이먼 리(Simon Lee Gallery (London))가 포커스 섹션에서 메인 전시장으로 승격됐다. 포커스 섹션에 새롭게 선정된 신진 갤러리도 올해는 7곳이나 된다. 상하이와 홍콩에서 이미 많은 주목을 받았던 안테나 스페이스(Antenna Space (Shanghai))와 홉킨슨 모스만(Hopkinson Mossman (Auckland))이 특히 눈에 띄는 곳이다.
이 외에도 포커스 섹션에는 새롭게 부상하는 작가의 개인전 형태 전시가 있어 관객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줄 것이다. 해롤드 안카르트(Harold Ancart)의 개인전은 뉴욕의 클리어링(Clearing)이, 스타노 필코(Stano Filko)의 개인전은 비엔나의 갤러리 임마누엘 레이어(Galerie Emanuel Layr)갤러리가 여는 등, 전시 속 전시들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들 역시 프리즈 페어에 작품을 출품할 때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요즘 가장 떠오르고 있는 작가 얀 보(Dahn Voh)는 프리즈를 위해 특별한 작업을 하고 싶어 했고, 큐레이터에게 앤디 워홀이 만든 핑크색 바탕의 전기의자가 그려진 판화를 구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의 요구에 큐레이터는 그 판화를 소더비 경매에서 직접 샀고,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작품이 앤디 워홀의 작품 위에 덧그려져 탄생하기도 했다.
올해 프리즈 페어는 10월 14일부터 17일까지, 전 세계 30개국에서 160개 이상의 갤러리들이 참여한다. 아직 모든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리스트가 공개된 파트는 ‘프리즈 프로젝트(Frieze Projects)’의 일환인 ‘프리즈 필름(Frieze Film)’이다. 프리즈 필름은 말 그대로 새로운 영상 작업 위주의 섹션인데, 영상물이 TV로도 송신되어 더 많은 관객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해 프리즈 페어가 특히 기대되는 것은 수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총감독이 된 빅토리아 시달(Victoria Siddall)은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 아직 본 전시까지 한 달 이상 남은 상황이라 올해 전시의 모든 것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우선 가장 주목할 만한 소식은 새로운 잡지의 출간이다. <프리즈 위크(Frieze Week)>라는 이름의 이 잡지는 유명 셰프인 조르지오 로카텔리(Giorgio Locatelli)와 유명 큐레이터 노만 로젠탈 등이 전하는 런던의 먹거리, 데미언 허스트의 새로운 미술관, 콜렉터의 인터뷰 등이 알차게 실려있어 프리즈 페어 기간 중에 런던을 찾는 이들에게 멋진 이정표가 될 것 같다.
이 외에도 미국 개념주의 작가 루츠 바허(Lutz Bacher)의 수수께끼 같은 설치물, 아티스트 그룹인 AYRBRB의 대형 인터랙티브 구조물, 제레미 허버트(Jeremy Herbert)가 전시장 지하에 설치할 벙커 형식의 설치물 등 기대되는 전시가 산더미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는 아티스트는 테아 디요르디아체(Thea Djordjadze)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거대한 20세기의 거장 앙리 마티스에게 영감을 받은 거대한 화분을 전시할 예정이다. 이 지상 최대의 미술 축제를 직접 볼 수 있는 행운을 당신이 거머쥐었기를 빈다.
BOX
Must See
프리즈 아트 페어 기간에는 리젠트 공원에서 열리는 공식 행사 외에 위성 전시들이 런던 곳곳에서 열린다. 이 글을 쓴 김승민 대표가 13명의 다국적 큐레이터와 같이 기획하는 전시 ‘Silent Movie’전도 위성 전시 중 하나다. 리젠트 공원 앞 대형 지하 주차장의 지하3층 전체를 전시장 삼아 100여 명의 작가들이 작품을 설치한다. 10월 16일에 개막하는 이 위성전시는 24시간 내내 개방된다는 특징도 있다. 3년 전 시작된 이 전시는 스위스,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 전 세계 큐레이터들과 손잡고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가진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승민 대표는 유일한 아시아 출신 큐레이터로 주최측의 초청을 받아 전시에 참여한다. 신기운, 하눅, 무나씨, 정이바, 바다 등 한국 작가 7명을 포함한 다양한 작가들의 전시를 볼 수 있다. 꼭 한 번 들러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