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뜨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속에는 ‘해변의 남자’로 알려진 사나이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그는 남부 프랑스 휴양지 해변에서 늘 시간을 보내며, 매년 휴양지를 찾는 부유한 이들과 친밀하게 지내 그들이 찍은 수많은 사진들 속에 등장한다. 막상 휴가철이 지나면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왜 이곳에서 여름을 보내는지 등 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그 ‘해변의 남자’는 모래의 발자국처럼 많은 이들의 머리 속에 흔적으로 존재하며 관계를 맺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관계는 모래가 쓸려나가면 사라질 흔적뿐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해변의 남자’는 인간실존을 상징하고 흔적으로써 기억되는 관계에 대한 은유법이다. 늘 대중의 관심과 감시 속에서 자아를 표현해야 하는 연예인의 운명. 그러한 자리매김은 쓸려가는 모래알과 같은 허망함 일듯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권지안/솔비의 새 작업 시리즈 <트라스-흔적>은 어쩌면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한 그의 다른 이야기일지 모른다. 이는 미술과 사랑에 빠진 자신의 흔적을, 타인의 투영으로 인한 관계설정을 초월하여 자아를 다시 재발견하는 여정의 시작일까?
작가 권지안은 <트라스 – 흔적> 시리즈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액션 페인팅과 같이 행위 자체를 작품으로 소진해버리는 작품과 사례는 많지만 제 작업은 흔적으로 시작해서 흔적으로 마무리 됩니다. 음악을 창작하고, 직접 가사를 쓰고, 내 목소리는 음악 속에 새로운 악기가 되고, 그 음악은 레코딩 돼 남겨집니다. 그러한 음악에 맞게 안무를 짜고, 그 안무를 몸으로 표현하며 동시에 캔버스에 그림을 옮기는 흔적들이 곧 작업인 것이죠. 또 이 흔적의 경유 과정을 미디어아트를 통해 남기는 겁니다.”
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각주와 같은 다음 고백에 담겨있다.
“내가 정말 담고 싶은 건, 내가 알 수 없는 내 세계를 끌어내고 싶은 거죠.”
트라스 시리즈를 보면서 다섯 가지 흔적에 대한 미술사적 이야기를 연결시키고 싶다.
하나.
레코드의 시대 이전의 음악은,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갔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다시 재생될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기에 많은 이들은 그 찰나를 기억하기 위해 음악을 그림 속에, 또는 시속에 담았다. 우리 현대인들은 오래된 미술 작품 속에 녹아나는 선율과 다양한 화음을 무심코 지나친다. 그러나 당시대인들은 그림 속의 악기들, 노래 부르는 이들의 입 모양, 그리고 형상화 된 춤사위들을 보며 상상속 자기만의 음악세계에 몰입하지 않았을까.
둘
퍼포먼스 아트 속 작가의 매개체는 작가의 몸이다. 라이브로 작가의 몸이 움직일 때 크게 네 가지 요소, 즉 시간, 공간, 몸 그리고 관객과 퍼포머 사이의 관계형성이 작용한다. 그리고 퍼포먼스 아트는 다원적이다. 시각미술, 비디오, 사운드, 간단한 무대 혹은 오브제 등이 적용되는 협업의 작업일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퍼포먼스가 일시적이지 않다. 오히려 디지털 미디어 통해 수없이 재생되고 많은 관객과 소통을 하게 된다.
셋
그녀의 작품은 현란한 기교 없이 솔직담백하고 때로는 유아적이기도 하다. 어쩌면 정상적인 삶을 포기해야만 했고 대중과 타인들의 구도속에서 잃어버렸던 시절을 되찾고픈 마음일까? 사실 의아할 정도로 권지안의 그림 작품은 그녀의 대중적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르다. 어린 아이의 유하면서도 상처 받기 쉬운 마음이 화폭에 담겨져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쇼킹한 그의 작품과 더불어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 왜곡을 택했다.”라는 말을 통해 강한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권지안은 왜곡을 말하기 위해 진실을 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넷
엠비언트 뮤직의 창시자이면서 미술 작업을 하고 있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그레이슨 페리(Grayson Perry)의 대담이 머리 속에 남아있다. 브라이언 이노는 음악 작업과 미술 작업의 차이가 협력에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음악은 계속 반복되어서 누구나 소유할 수 있고 재작업/reproduction이 터부시 할 일도 아니며 협업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에 비해, 미술은 독창성/originality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했다. 이에 대해 그레이슨 페리는 미술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미술관에서 인정하는 계보에 들어가야 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미술교육을 받지 않아도, 미술관에 들어가지 않아도, 본인이 느끼는 예술적 영감을 협업을 통해 자유롭게 전하는 것이 권지안의 접근법이다.
다섯
영국의 유수한 미술상인 터너상은 매년 최고의 미술 작가에게 수여된다. 마틴 크리드의 Work No.227 작업은 테이트 미술관의 빈 방에 5초 간격으로 불이 켜지고 꺼지는 일이 반복되는 작업이다. 미술관에 들어갔을 때 관객이 예상하는 공간과 시간, 작업의 개념에 도전하면서 마틴 크리드는 관객(VIEWER)에게 미술관 속 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정립한다. 어쩌면 자신의 양면성, 또한 불이 꺼진 무대의 허전함을 말하듯, 야광물감을 이용한 권지안의 작품은 어둠 속에서 남다른 자기성찰을 전한다.
내 자신을 사랑하고 나를 지켜주기 위해서 붓을 처음 들었다는 작가 권지안. 그가 솔비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작업을 했다면, 지금은 자신을 위해 작업을 한다. 권지안에게는 미술시장의 오래된 문법들, 보이지 않는 룰에 예속되지 않으며, 무지에서 오는 자유로움이 있다. 권지안이 용기를 내어 한 고백 – 우리가 스스로 붓을 들어 우리의 흔적을 그린다면, 그 모습은 어떨까?
김승민 큐레이터글 (by Stephanie Seungmin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