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의 취권 같은 미술에 대해 쓰는 글
최정화의 화려한 경력과 범상치 않은 외모는 스스로 말하는 본인의 미술 세계를 뒷받침하는 ‘아줌마의 힘과 정신’과 언뜻 모순되게 보일지도 모른다. 또한 우리나라의 시장과 뒷골목, 간판 등을 당당히 보여주는 그는 “한국적이다”라는 평에 늘 “그런가요?”라고 되묻는 작가이다. 신선하고 범상치 않은 미술 설치로 감동을 주는 최정화와 함께 한 Shine a Light전시 준비 기간 4개월, 설치 기간 4주. 그를 가까이서 본 기간 동안 작품을 만드는 내공에 대한 비밀을 캐보았다.
오해와 진실
그를 엔디 워홀과 같은 사업가로 비교하며 가끔 그의 미술을 “팝 아트”로 규정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워홀의 켐벨 캔 수프는 첫 눈에는 드러나지 않는 상업적인 세련미가 지배한다. 또한 바람이 들락날락하는 풍선으로 거대한 설치 작품을 만드는 제프 쿤스는 에로틱배우 여자친구와 퍼포먼스를 벌리기도 하는 연출가이다. 그들에 비해 최정화는 여행을 즐기는 뚜벅이며, 그 흔한 핸드폰도 없고, 쭈그리고 앉아 플라스틱 바가지를 직접 손으로 이으면서 ‘남자 아줌마’라는 별명을 즐긴다. 그와 담소를 하다 보면 그는 살아있는 ‘도덕경’을 읊는, 시인보다는 철학가에 가까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궁금해서 좀 더 깊게 들어가려고 하면 그는 결국 “뻥이에요”라며 대화를 끝낸다. SOAS 대학과 소더비 대학의 학생 30여명과의 만남에서도 학생들이 예리한 질문을 주고 받으며 활기찬 토론을 벌이자 최정화는 “어떻게 정답 같은 얘기를 그렇게 할 수 있죠? 저도 그 대답을 외우겠습니다” 라고 더 신나 했다. 시골 장터의 아줌마들이나 입을듯한 꽃 바지를 즐겨 입는 그는 하찮은 재료로 구성을 다지며 너무나 자유롭게 ‘놀듯이’작업한다.
그러나 그와 작품설치를 함께하는 극소수의 지인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는 어느 각도로 찍어도 화려한 결과의 작품이 될 때까지 수백 번의 실험을 한다. 단순하게 재미로 예수상에 씌운 듯한 울트라 맨 마스크도 헬로 키티 마스크를 포함한 여러 가지의 가면을 시도해 본 뒤 결정됐다. (fig 1) 그 결과는 언뜻 엉성해 보지만 요즘 흔히 거론되는 ‘포스’, 보이지 않는 힘의 결정체이다. 그의 아트는 마치 취권처럼 엉성한 듯 하다가 날카로운 일격을 날린다.
아줌마와 동남아시아 여행의 공통점
어머니와 할머니께 자신의 미술의 기본을 배웠다는 최정화 표 ‘아줌마 담론’의 본질에 대한 대답을 오히려 그의 다른 설명에서 찾았다. 최정화는 “20대 때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다가 그 곳에서 생존의 법칙을 배웠다”며 이번 전시 포럼에서 그의 예술세계의 첫 지각변동을 암시하였다. 그러한 ‘생존’이라는 화두는 386세대로서 자란 그의 의식 속에 억척스럽게 생활을 꾸려가던 우리들의 ‘아줌마’를 연상시킨다. 그가 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보았던 색색의 한껏 멋을 부린‘키치’(Kitsch)한 물건들의 에너지를 이해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아줌마성이란, 바로 국경과 시대를 넘나드는 생존본능이다. 최정화는 가식적이지 않고, 실용적이며,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존심 센 순수함에 끌렸고, 그의 작업은 생존에서 살아남은 것들 이변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순수함을 볼 수 있는 자유로움
작가의 또 다른 내면을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의 작명법이다. 어느 작가에게나 작품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은 진지하고 중요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작품 이름을 지어 줄 것을 진지하게 물어본다. 그리고 그 중 가장 간단한 것으로 ‘그냥 간다.’ 부글부글, 해피해피, 무지개 등의 명칭은 그렇듯 화끈하게 작업 현장에서 즉석으로 지어졌다. 최정화는 작품 발상, 작업과정, 마무리에서 작명까지 자유로움 속에서 숨쉰다. 권위에서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첫 번째, 그의 에너지는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해박한 지식에서 나온다. 처음에는 Shine a Light의 전시 제목을 정한 뒤 그러한 세계를 더 이해하고자 동명의 영화를 조사하고, 롤링스톤의 가사를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제목은 계절 특성상 영국이 어두우니 우리의 ‘쨍 하고 해 뜰 날’이란 가요처럼 빛 속에 살고 싶다는 내용임을 알았다. 본 전시의 국문 제목인 전광석화(電光石火)’를 풀어 쓴 ‘번개 불이 번쩍’은 또 Shine a Light과 어감이 달랐다. 그는 빛이라는 단어가 함구하는 영원을 이야기 하고 싶다고 말했다. ‘번쩍’은 천둥번개, 태양의 햇살, 플라스틱의 반짝임부터 첨단 LED 라이트의 인위적인 눈부심까지 여러 빛을 포함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빛과 플라스틱에 대한 의식전환을 요구한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관은 “분석적, 이분법 적 세계관에서 해방되어 큰 원으로 돌아간다” 라고 쓴 그의 낙서에서 힌트를 얻는다. 근본적으로 주체와 객체를 가르는 이분법적 행위보다는 일체화 시키는 행위 안에서 예술을 찾는 그의 접근법은 동양 철학과 그‘道’를 같이한다.
두 번째, 그는 예쁜 색은 좋아하지만 가식적으로 미화된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즉, 극도의 조형성을 멀리함으로써 본의의 거칢을 유지한다. 최정화는 문화원이 자리 잡고 있는 런던의 웅장한 트라팔가 심장부에 비닐봉지를 나뭇가지에 거는 쓰레기 산수화를 제안했다. 11월은 ‘쓰레기 산수화’의 공공미술작품 당위성을 인정받기 위해 서류를 준비, 12월에는 시 위원회에게 프로젝트 진행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2009년 1월 이웃들의 반대가 여러 개 들어왔다는 비관적인 의견이 들어온다. 결국 우리가 꿈꾸던 아름다운 ‘산수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체면 차리지 않는 공공미술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의 공공미술은 미화 또는 인기 끌기가 목적이 아닌 계몽이 목적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비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빠글빠글, 반짝반짝 같이 의태어, 의성어가 반복이 되는 한국말은 외국인이나 한국인에게도 유치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치열하게 투쟁하며 전진하는 아줌마들을 포함한 수많은 여성들에게 그의 영감을 돌리는 최정화는 철저하게 예술을 하면서도 비평을 의식하지 않고 웃어 넘길 수 있는 그릇이 있다. 남자아줌마가 취미로 예술을 하는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드리냐고 웃어버리는 그다.
어찌됐건 그 철저함의 결과는 숫자로 드러나다. Shine a Light 전시 개막 후 문화원의 방문객수가 끊임 없이 매일 190명, 200명에 달한다. 그 중 모녀/모자가 많은데, 이들은 나에게 반가운 눈인사를 보낸다. 무심코 방학 이라 왔겠지 하다가 나에게 말을 거는 아이를 통해 비로서 전시 워크샵에 참여한 아이들임을 알았다. 아이들이 그때의 감동 이후 부모를 설득한 후 손잡고 같이 오는 것이다.
행복함
최정화 미술의 원동력이 아줌마라고 길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만, 아줌마라는 존재가 없는 런던에서 실제로 전시를 보러 온 현지인들의 반응은 ‘행복함’이 주류를 이룬다. 우리들의 아줌마들의 촌스러운 옷과 거침 없는 행동도 결국 가족을 위해 질주하는 생존력을 반영하듯. 그는 색색의 활력이 강한, 사람들의 본능을 움직이는 작품을 선보인다. 도인을 닮았지만 “몸빼 바지를 입는 아줌마”라 겸손하게 말하는 박식한 작가 최정화. 그의 미술은 그와 닮았다.
김승민 큐레이터 글 (by Stephanie Seungmin Kim)



